작곡가들의 수입 (체르니)
베토벤의 유일한 적통 수제자
체르니는 이 타이틀 하나로 생전에도 1타 강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우리에게도 모두의 선생님이 된 레슨에 올인한 작곡가임.
비엔나에 가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년 신년 음악회를 하는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이 있는데, 이 건물의 소유주는 비엔나 음악협회임.
이 건물을 짓는데 가장 많은 돈을 낸 건 기업가인 니콜라우스 둠바라서, 건물 바로 앞 도로 이름이 Dumbastraße, 둠바 거리임.
하지만, 이 건물의 소유주인 비엔나 음악협회가 건물을 짓는데 중요한 종잣돈이 된 건 체르니의 기부금이었음.
체르니는 유언장에 내 재산의 대부분을 비엔나 음악협회에 남긴다라고 썼는데, 총 유산 102,642 굴덴에서 장례비용, 세금, 가정부에게 준 퇴직금, 그리고 몇몇 자선 단체 기부금을 제외한 나머지 전액(약 9만~10만 굴덴 상당)이 비엔나 음악협회로 일괄 귀속됨.
이것은 음악가 개인이 낸 기부금으로는 당시 비엔나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 기록임.
체르니는 비엔나 귀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교사였고, 베토벤 제자라는 타이틀로 비엔나에서 가장 비싼 레슨비를 받으며 활동함. (유일하게 무료로 가르친 제자가 프란츠 리스트임.)
레슨비도 많이 받았지만, 일요일도 없이 하루에 10시간~12시간씩 레슨을 했고, 남는 시간엔 악보를 씀.
체르니의 작품은 공식적으로 Op. 861까지 있고, 번호 없는 것까지 합치면 1,000곡이 넘음. (체르니 100은 작품번호 op.139로 안에는 100개의 연습곡이 있지만 하나의 작품임.)
체르니는 피아노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걸 보고 다수의 에튀드를 만들어 전 유럽에 팔았고, 로시니나 벨리니의 인기 오페라가 나오면, 다음 날 바로 피아노 솔로로 편곡해서 출판사에 판매하기도 함.
아무리 봐도 돈을 벌기만 할 뿐 쓸 시간이 없는데다, 술이나 도박은 물론 여자도 안만나고 검소하게 생활함. 독신으로 부양가족도 없이 고양이 7~10마리와 함께 살았으니 돈이 나갈 구멍이 없었음.
앞서 말한 다른 작곡가들이 귀족이나 왕실로 부터 고정적인 후원에 의존한 반면 체르니는 오로지 본인의 노동과 악보판매만으로 돈을 벌었고, 평생을 모은 돈을 비엔나 음악협회가 세계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운영되는 기초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를 한 셈임.
로데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회상’ (Variations on a Theme by Rode, Op. 33 La Ricordanza)
이 곡은 호로비츠가 자신의 레퍼토리로 사용하고,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앙코르 곡이나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 자주 연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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