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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의 수입 (모차르트)

작곡가들의 수입 (모차르트) 이미지 1

“모차르트 사후 남은 빚은 3,000 굴덴”

모차르트가 사망할 당시, 마차는 물론 은식기까지 전당포에 잡혀있었고, 당시 기준으로 초호화 펜트하우스 급인 돔가세 5번지 아파트에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한 상태였음.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 묘지를 따로 사고 비석을 세울 돈이 없었고, 당시의 장례 간소화법에 따라 평민인 모차르트는 성 마르크스 묘지의 공용 구덩이에 묻힘.

이게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시신을 자루에 담아 대충 구덩이에 던지는 장면임.

작곡가들의 수입 (모차르트) 이미지 2

아내인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남긴 미발표 악보를 독일의 출판업자 요한 안톤 안드레와 긴 협상 끝에 3,150 굴덴에 판매해 모차르트가 남긴 빚을 한 번에 청산함.

또 발제그 백작에게 계약금만 받고 쓰다만 모차르트의 유작 레퀴엠을 여러 제자에게 완성시키게 한 후, 그 중 쥐스마이어의 것을 선택해 모차르트가 다 쓴 척하고 넘겨 잔금을 받음.

이걸로 마이너스에서 제로로 바꾼 후 정신을 수습한 콘스탄체는 황제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며 레퀴엠과 모차르트의 미공개 곡들로 추모 음악회를 기획함.

문헌에 따라 다르지만 공연 횟수의 최소치가 30회라고 하고, 한 회 공연에서 남은 순수익이 3,000굴덴이었으니 대단한 수익임.

또, 콘스탄체는 덴마크 외교관 게오르크 니센과 재혼했는데, 니센은 모차르트를 너무 존경해서, 자기 본업도 제쳐두고 콘스탄체를 도와 모차르트의 악보를 정리하고 전기를 쓰는 데 평생을 바침.

나중에 이 전기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모두 콘스탄체가 관리했고, 80세에 사망당시 장남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와 차남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에게 남김.

현금유산 약 40,000굴덴

부동산과 보석, 그리고 아직 팔지 않은 모차르트의 유품들을 이 두 아들에게 모두 물려줌.

그리고 2년 뒤 차남 프란츠 사버가 위암에 걸려 사망하면서, 모차르트의 악보, 책, 피아노 등을 1841년에 설립된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당시엔 대성당 음악협회)에 기증함.

1858년 장남인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도 사망하면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재산 + 동생(프란츠)이 죽으면서 남긴 재산까지 모두 모차르테움에 기부함.

모차르트의 두 아들 모두 미혼이라 모차르트의 직계는 끊겼지만, 모차르트가 남긴 악보와 콘스텐체의 노력으로 모차르트 재단의 설립 기반 자금이 만들어진 것임.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유산에 본인의 노력을 더해 벌어들은 금액은 약 100,000굴덴으로 추정되며, 모차르트 재단에 기부된 금액은 약 35,000굴덴임.

콘스텐체나 두 아들이 모차르트의 유품을 다 팔았다면 더 큰 부를 가졌겠지만, 저당으로 넘어간 물건 이외는 하나도 팔지않고 모두 모차르테움에 기증되었으니 35,000굴덴 이상의 가치라고 볼 수 있음.

마지막으로, 모차르트가 살아 생전에 번 돈은

1784~1787년 사이가 모차르트 활동의 전성기인데,

  • 황제 요제프 2세가 비엔나를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매년 지급한800 굴덴.

  • 모차르트가 직접 기획한 아카데미 콘서트 티켓 수입.1,500굴덴

  • 레슨비(정확한 추산은 없음)

  • 오페라 작곡료와 그 외 작곡료

  • 귀족들을 위한 출장 연주

등을 추정하면 년간 5,000굴덴이상을 벌었음.

벌긴 엄청나게 벌었는데, 그보다 더한 씀씀이로 가진돈은 없고, 죽기 직전까지 마술피리, 레퀴엠, 황제 대관식 오페라 대작 3개를 동시에 작곡하느라 몸을 갈아넣었고 있었으니 몸이 배겨날 수 없는 상태였음.

모차르트가 직접 기획한 아카데미 콘서트는, 오페라 공연이 금지 된 사순절 시기에 텅빈 극장을 이용해서 금지되지 않은 기악 공연을 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함. 이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 메인 이벤트였다고 함.

구성은

오프닝으로 교향곡을 연주하고

소프라노가 나와서 아리아 한 곡 부르면

메인 이벤트인 모차르트가 나와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함.

그리고 반응이 좋으면, 모차르트의 즉흥 연주가 이어짐.

클로징은 아까 연주했던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이 기획을 사순절 시기동안 무려 22회나 했다고 함. 티켓을 당일 판매한 것이 아니고 시즌제 형태로 귀족들에게 선금을 받은거라 몸이 축나도 무리하게 진행한 것임.

그래서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공연이 시작 1시간 전에서야 악보가 완성되서, 필사생들이 옆에서 대기하다가 한 장 다 쓰면 낚아채서 파트 악보를 만들어 연주자들 모두 초견으로 공연했다고 함.

그럼에도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베토벤이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직접 카덴자를 작곡해서 붙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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