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들의 수입 (살리에리)
“나는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언제든 무상으로 가르칠 준비가 되어있다.”
살리에리의 수입은 사실 이 한마디로 정리가 됨.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같은 거장들을 가르쳤는데, 대부분 무료로 가르치고, 심지어 슈베르트에게는 밥까지 사 먹여가며 가르침.
또한 음악가와 그 유족을 돕기위해 설립한 음악가 협회(Tonkünstler-Societät)에서 살리에리는 협회 회장으로서 24년 동안 자선 연주회를 기획하고 지휘함.
그가 주도한 자선 공연(주로 하이든의 천지창조 등을 연주)을 통해 협회가 벌어들인 수익은 총 60,000 굴덴 이상으로 추산됨.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2인자 이미지가 생겨버렸지만, 사실 살리에리는 비엔나 음악계의 최고 권력이자, 평생 돈 걱정 없이 산 최고위직 공무원이었음.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충분하기 때문에 주변을 돕고 베풀며 존경받으며 살았고, 모차르트를 싫어한 건 맞지만 죽일정도로 남을 질투할 이유도 없었음.
Salieri - 26 Variationen über “La Folia di Spagna” | Reinhard Goebel | WDR Sinfonieorchester
살리에리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26 Variations on La Follia
따지면 생전엔 대우를 잘 받았지만 남긴 음악이 현대에 큰 인기가 없을 뿐 당시엔 신분도 높고 명예로운 삶이었음.
살리에리는 1774년에 궁정 작곡가로 임명되었을 때 기본급이 약 1,200 굴덴이었음.
이후 1788년부터 1824년까지 36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 궁정 악장을 지냄.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음악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고 명예로운 자리였음.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오페라 감독과 황실 연회 음악 담당을 겸직하며 연간 3,000굴덴을 받음.
당시 생계에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것 중 하나가 땔감과 조명 비용인데, 장작과 양초, 와인이 죽을 때까지 황실로 부터 제공되었음.
1824년, 너무 늙어 은퇴할 때 황제는 현직 때 받던 봉급 전액을 죽을 때까지 지급하라고 명령함. (살리에리는 1825년에 사망)
살리에리가 궁정악장으로 승진하기 1년 전, 1787년 6월 8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타라르와 관련하여 살리에리가 작곡으로 챙긴 수익은 대략 다음과 같음. 약 9,000 굴덴 (추산)이며, 당시 살리에리가 궁정작곡가로 받던 금액의 7.5년치에 달함.
오페라 한 번 올리고 번 돈으로선 대단한 수익인데, 타라르의 대본을 쓴 피에르 보마르셰(피가로의 결혼의 원작자)의 덕을 본 것도 있지만, 오스트리아 궁정작곡가라는 타이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걸 뜻 함.
또, 생전에 악보 판매 수익과 오스트리아와 파리 귀족들에게 받은 별도 후원금까지 합친다면 상당한 수익이 있었겠지만, 살리에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정확한 금액을 알 순 없음.
어쨌든, 살리에리가 평생 번 돈은 단순 합산액인 136,800 굴덴이고, 아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오스트리아 전체에서 상위 5%안에 드는 고소득자라고 함.
이 글에 관련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dcinside digital piano gallery에도 게시하고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은 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