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들의 수입 (리스트 5)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도피 생활을 하던 중 이탈리아 북부 휴양지 코모 호수에서 둘째 딸 코지마가 태어남.
1857년, 리스트는 자신의 수제자 한스 폰 뷜로 남작과 코지마를 결혼시킴. 뷜로는 재능 있는 지휘자였고, 독일에서 전통있는 귀족이었음.
큰딸(블랑딘)에게 10만 프랑을 준 계약서는 남아있지만, 코지마에게도 똑같이 10만 프랑을 주었는지는 확인되진 않음. 리스트가 뷜로 가문에 딸을 보내면서 큰딸과 비슷한 거액의 지참금을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음.
신혼여행 때 뷜로와 코지마는 리스트의 오랜 친구인 바그너의 집을 방문했음.
당시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쓰는 중이었는데, 두 부부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주요 대사들을 낭독해주며 소감을 물었다고 함.
바그너는 1849년 드레스덴 혁명 가담 건으로 사형 선고가 내려진 지명수배자 였는데, 리스트가 위조 여권을 만들어주고, 도피 자금을 마련해 스위스로 탈출시켰음.
스위스에 도피생활중인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러 간 이유는 뷜로가 바그너를 광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임.
이후 바그너는 사면을 받아 독일로 돌아오고, 1863년 11월 베를린에 연주차 방문했을 때 뷜로 부부를 다시 만남.
당시 뷜로는 베를린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며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음.
바그너가 베를린 공연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뷜로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공연장을 잡고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는 일까지 도맡아 함.
바그너의 음악(특히 트리스탄)은 당시 오케스트라에선 이걸 어떻게 연주하냐며 욕할 정도로 어려웠는데, 단원들을 연주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놓은것임.
최종 리허설날 뷜로는 공연장에 먼저 가서 오케스트라 세팅을 점검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음.
그 시각 바그너는 뷜로의 아내인 코지마를 마차에 태우고 공연장으로 이동 중이었음.
그리고 그날 바그너는 일기에 마차에서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맹세했다.라고 적음.
바그너는 이듬해 4월에 또다시 거액의 빚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며 도피와 은둔 생활을 시작함.
잠시 바그너의 긴 도피 생활 얘기를 하면,
리스트가 바그너의 도피생활동안 주고받은 편지 중 약 40%가 바그너의 송금요청이라고 함.
Correspondence of Wagner and Liszt — Volume 1 by Richard Wagner and Franz Liszt
Free kindle book and epub digitized and proofread by volunteers.
바그너와 리스트의 서신집
처음에는 장작 살 돈이 없다, 와인 살 돈이 없다, 이사해야 한다며 정중한 부탁조로 보내다가
너는 나의 창조자이며, 나에게 대한 의무가 있다.
라거나
돈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 그래야 내가 예술에 전념할 수 있다.
라며 닥달하기 시작함.
편지에는 필요한 액수가 늘 적혀 있었고, 집을 사달라거나 피아노를 사서 보내라는 요구도 있었음.
이에대해 리스트는 불만없이 항상 돈을 보내줬고, 피아노도 사서 보내줌. 집을 사달라는 요구에만 집세와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함.
리스트의 지원은 현금 외에도 오페라 초연 주선, 공연 기회 제공으로 확대되지만, 정확 집계는 불가능하며 전기 저자들이 서신에 적힌 금액과 기타 증언들을 종합해 수만 프랑, 또는 10만 프랑엔 못 미친다라고 함.
바그너는 리스트에게 돈은 하나도 안 갚았음.
어쨌든 리스트가 생활비를 대줘서 만든 그 곡이, 결국 리스트 딸의 마음을 훔친 셈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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