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이동

58. 베토벤 열정 소나타 1악장

© 2009 Chuan C. Chang. Copy permitted if author’s name, Chuan C. Chang, and this copyright statement are included.

피아노 연습의 원리 한글판 (dcinside digital piano gallery)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 작품 57과 교향곡 5번은 비슷한 시기에 쓰였음. 저자는 열정 소나타를 교향곡 5번의 피아노판처럼 봄. 두 작품 모두 네 음으로 된 운명 모티브를 뼈대로 삼았고, 소나타의 뒤 악장도 교향곡의 흐름과 대체로 나란히 간다고 설명함.

1악장 첫 세 음은 평범한 아르페지오처럼 들림. 하지만 이 짧은 도입부터 악장 전체의 구조가 이미 시작됨.

교향곡 5번의 운명 모티브는 같은 음 세 번 뒤에 예상 밖의 음이 나오는 네 음 구조임. 열정 소나타의 첫머리에서는 둘째 음을 쉬어 세 음만 남김. 그 결과 악보에는 아르페지오처럼 보이지만, 실제 뼈대는 운명 모티브임.

마지막에 나오는 파가 ‘예상 밖의 음’에 해당하므로 강세도 첫음이 아니라 셋째 음에 놓임. 10마디에서는 변형하지 않은 운명 모티브가 직접 등장해 이 해석을 확인해 줌. 얼핏 들으면 잘 어울려서 끼워 넣은 인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장 전체가 같은 모티브에서 자라남.

첫 아르페지오는 겹옥타브로 연주함. 한 옥타브보다 두 옥타브 간격에서 스트레치 조율의 효과가 더 크게 들림. 조율사도 같은 성질을 이용해 유니즌 조율 등을 검사함.

저자는 베토벤이 스트레치 조율을 이론으로 알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소리는 분명 들었을 것이라고 봄. 겹옥타브를 선택한 데에도 음악적인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큼. 베토벤 음악에서는 음 하나와 음형 하나까지도 맡은 역할이 뚜렷하다는 설명임.

운명 모티브는 마지막 음에 강세가 놓임. 앞의 흐름을 마치면서 다음 흐름을 출발시키기에 좋은 형태라 베토벤은 악구·마디·구간을 잇는 연결부로 계속 사용했음.

도입부는 011마디에서 시작하고 1415마디에서 끝남. 사이의 12~13마디에서 운명 모티브를 되풀이해 도입부의 앞뒤를 연결함.

16마디 끝에서도 같은 모티브가 17마디를 출발시킴.

34마디의 마지막 셋잇단음표와 35마디 첫음이 운명 모티브를 이룸. 앞에서 길게 이어진 셋잇단음표가 긴장을 쌓고, 모티브의 마지막 음에서 그 긴장을 풀면서 주제로 들어감.

35마디부터 나오는 주제도 변형한 운명 모티브만으로 구성됨. 저자는 이 대목을 악장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부분으로 평가함.

35마디 직전의 반복되는 셋잇단음표는 베토벤식 미니멀리즘임. 같은 움직임을 길게 이어 긴장감을 키우고, 중요한 주제가 곧 나온다는 기대를 만듦.

78마디와 79마디 사이에서도 운명 모티브가 새 구간을 시작함. 이와 비슷한 연결은 악장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음.

130~134마디에는 변형하지 않은 모티브가 또렷하게 적혀 있음. 여기에서도 서로 다른 두 구간을 잇는 역할을 맡음.

가장 긴 연결부는 235~240마디에 나옴. 모티브의 속도를 조금씩 늦춘 뒤 갑자기 빠르게 바꾸어 마지막 구간을 출발시킴.

저자는 이 변화를 군론의 대칭 변환에 빗대어 설명함. 교향곡 5번에서는 음높이 공간을 바꾸어 모티브를 전개했다면, 여기서는 시간 공간까지 더해 모티브를 늘이고 줄임. 셈여림과 음높이도 함께 변함.

베토벤은 1805년 무렵부터 이런 공간 변환을 작곡에 활용했음. 수학과 물리학에서 비슷한 개념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1830년경보다 앞선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임.

도입 리듬으로 주제를 미리 들려주기

섹션 제목: “도입 리듬으로 주제를 미리 들려주기”

도입부의 아르페지오와 35마디 주제가 닮았다는 점은 여러 연구자가 지적했음. 첫 아르페지오는 주제를 도식처럼 줄인 뒤 거꾸로 뒤집은 형태임.

베토벤은 주제가 나오기 전에 음정보다 리듬부터 청중의 기억에 심음. 도입 음형을 낯선 간격만큼 올려 한 번 더 되풀이한 것도 독특한 리듬을 확실히 기억시키려는 장치로 볼 수 있음. 교향곡 5번 첫머리에서 운명 모티브를 반복한 방식과 같음.

그래서 35마디에서 주제가 처음 나와도 완전히 낯설게 들리지 않음. 앞에서 리듬을 이미 여러 번 들었기 때문임.

도입 아르페지오의 셋째 음에는 별도 악센트가 없음. 박자표만으로도 자연스러운 무게가 생기므로 과장하지 않음. 베토벤은 더 노골적인 악센트를 악장 끝부분까지 아껴 둠.

3마디와 그와 비슷한 곳, 44~46마디의 트릴은 연주자마다 다르게 해석하기 쉬움. 저자는 트릴과 뒤따르는 턴을 합치면 운명 모티브의 다른 변형이 된다고 봄.

트릴은 같은 음을 되풀이하는 앞부분을 맡고, 마지막 턴은 예상 밖의 음을 맡음. 따라서 강조점도 트릴 자체가 아니라 끝의 턴에 놓음. 이렇게 연주하면 장식처럼 보이던 트릴이 주제의 일부로 들리기 시작함.

마지막 구간은 주제를 빠르게 바꾼 형태로 시작함. 243마디에 이르러 ‘예상 밖의 음’에 마침내 스포르찬도(sf)가 붙음.

도입에서는 박자 속에 숨겨 두었던 강세를 여기서는 누구나 알아들을 만큼 크게 드러냄. 주제보다 음의 도약도 넓어지고 화성도 거칠어져 효과가 더 강함.

청중은 같은 구조를 수백 번 들었어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음. 다만 반복이 만든 방향감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음. 243마디의 스포르찬도는 그동안 숨겨 둔 구조를 마지막에 폭로하는 순간이므로 어중간하게 치지 않음.

이 악장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속도도 중요함. 연주자는 이미 자신의 한계에 가까운 속도로 치게 되므로, 81마디에서 조금 더 빨라지라는 요구를 손가락 속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움.

베토벤은 앞의 여섯 음 묶음에서 음 하나를 빼 다섯 음 묶음으로 바꿈. 음과 음 사이의 속도를 그대로 두어도 묶음이 짧아져 전체 진행은 20% 빨라짐. 저자는 이를 원하는 가속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만든 장치로 설명함.

박자표를 엄격하게 지키려면 전체 템포를 유지하고 다섯 음 묶음만 느리게 쳐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함. 그러나 가속을 택하든 다섯 음을 늘이든 어느 한 규칙은 포기하게 됨. 베토벤이 기존 규칙을 깨고 더 좋은 음악을 만든 사례이며, 최종 선택은 연주자의 몫임.

82마디의 두 옥타브 솔 아래에서는 왼손에 여섯째 음이 다시 생김. 늘어난 한 음이 감속 폭을 정확히 알려 줌. 이 감속이 있어야 83마디에서 다시 빨라지는 효과도 분명해짐.

베토벤 음악은 한 마디 안에서도 여러 층이 동시에 움직임. 81마디만 살펴봐도 적어도 다음 여섯 요소가 겹쳐 있음.

  1. 여섯 음을 다섯 음으로 줄여 만든 20% 가속

  2. 앞의 규칙적인 여섯 음 묶음과 달리 불안과 의문을 만드는 다섯 음 묶음

  3. 67마디에서 바단조에서 다장조로 바뀐 조성

  4. 첫머리의 아르페지오를 다시 들려주는 오른손 선율

  5. 청중은 오른손 선율을 따라가지만 실제 감정은 빠른 왼손이 움직이는 구조

  6. 왼손의 빠른 묶음도 첫 아르페지오에서 가져온 재료라는 통일성

이 밖에도 더 많은 요소를 찾을 수 있음. 한 마디에 다섯 가지가 넘는 구조가 자주 겹치므로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이 들림.

음악성처럼 수치로 셀 수 없는 요소가 작품의 생명력을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일 수 있음. 여기에 빠르게 바뀌는 복잡한 구조까지 더해져 청중이 한 번에 모든 층을 파악할 수 없게 됨.

군론과 닮은 변환이나 치밀한 구조가 베토벤의 작곡법 자체였는지, 완성된 음악에 덧입힌 또 다른 차원이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움. 이런 분석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님. 다만 음악이 떠오르고 조직되는 베토벤의 사고 과정을 일부 엿볼 수는 있음.

© 2016 Chuan C. Chang. Copy permitted if authorship, Chuan C. Chang, is included.

이 글에 관련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dcinside digital piano gallery에도 게시하고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은 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