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수입 (리스트 4)
리스트의 세 자녀(블랑딘, 코지마, 다니엘) 중 아들 다니엘은 20살에 요절했고, 리스트는 남은 두 딸의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함.
첫째 딸 블랑딘 리스트는 32세의 젊은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인 에밀 올리비에와 결혼함.
블랑딘과 에밀은 친모인 마리 다구의 살롱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바이마르에 있던 리스트에게 편지로 결혼 허락을 구함.
편지를 받고 바로 파리로 달려온 리스트는 에밀이 연설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피아노 건반 위의 나처럼, 이 친구는 언어의 마술사다”라며 그가 나중에 큰일을 할 인물이라고 기뻐하며 바로 결혼을 승낙함. (무엇보다 사위가 배고픈 음악가가 아니라는 점을 매우 좋아했음.)
이때 리스트가 블랑딘에게 준 지참금(Dot)은 10만 프랑으로, 당시 초급 장교가 한 푼도 안 쓰고 100년을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음.
두 사람은 파리 상류사회의 모범적인 부부였고 에밀은 차근차근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었는데, 결혼 5년만에 블랑딘 리스트가 아들을 낳은 후 산욕열로 사망함.
에밀은 블랑딘이 죽고 7년을 혼자 지내다가 마리 테레즈 그라비에라는 남프랑스 출신의 평범한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그러고도 리스트와는 계속해서 가족처럼 지냈다고 함.
리스트는 말년에 에밀 올리비에가 사는 남프랑스 휴양지 생트로페의 별장에 자주 놀러 갔고, 피아노 연주도 자주 했다고 함.
자신의 딸(블랑딘)이 남긴 유일한 핏줄인 손자(다니엘 올리비에)를 새 부인이 정성껏 키워주는 것에 고마워하는 마음에 마리 테레즈가 낳은 아이들도 친손주처럼 귀여워해 줬고, 그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걸 매우 좋아했음.
현재 에밀 올리비에가 살던 생트로페의 저택은 리스트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음. 그곳엔 에밀의 유품뿐만 아니라, 리스트가 노년에 방문해 연주했던 피아노와 친필 악보, 편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
에밀이 재혼한 부인과 그 자손들이 전처의 아버지인 리스트를 우리 집안의 위대한 할아버지로 모시며 대를 이어 유품을 지켜온 덕임.
에밀 올리비에는 블랑딘 리스트가 죽고 8년 후인 1870년 1월 2일, 프랑스 제국의 국무회의 의장(지금의 프랑스 총리)에 취임함.
결혼 당시 에밀은 갓 정계에 입문한 30대 초반의 초선 의원에 불과했음. 하지만 리스트는 주변에 보내는 편지마다 내 사위는 나중에 큰일 낼 사람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는데, 그 안목대로 정말로 프랑스 총리까지 올라감.
결국, 리스트가 로스차일드 뱅크에 예탁해두었던 30만 프랑중 10만 프랑은, 딸의 행복과 사위의 성공을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로 쓰인 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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