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들의 수입 (클레멘티)
후대 역사학자들이 클레멘티를 피아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건, 피아노 발전과 보급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임.
클레멘티는 연주자 생활을 접고 영국 런던에 정착해 Clementi & Co.를 설립해 피아노를 제조했고, 소리가 더 크고 웅장하게 나도록 개량하는데 성공해 영국식 피아노의 시작점이 됨, 이것이 현대 피아노의 근간임.
피아노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필수 혼수품이자 사치품이었고, 클레멘티의 공장에서 만든 피아노는 내구성이 좋고 소리가 커서 큰 인기였음.
베토벤도 이런 이유로 클레멘티를 좋아했고, 힘차고 웅장한 클레멘티의 주법이 자신의 음악과 맞는다고 생각함.
베토벤은 조카 카를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는, 자신의 곡이나 모차르트 곡이 아니라 클레멘티의 교본으로 가르치라고 지시한 기록을 보면, 베토벤은 클레멘티의 음악성과 피아노를 모두 좋아한듯 함.
클레멘티는 런던에서 레슨을 할 때 시간당 1기니를 받았는데, 당시 런던의 숙련된 기술자의 일주일 치 주급이 1기니 였다고함.
클레멘티는 이 외에도 출판사를 차려서 자기 곡뿐만 아니라 베토벤, 하이든의 곡을 영국에 독점 공급함.
이렇게 사업과 레슨으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피아노라는 악기의 기계적 발전과 연주법을 완성시켜, 런던을 피아노 산업의 중심지로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죽어서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묻히게 됨.
물론, 헨델이 묻힌 본관이 아니라 사원 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남쪽 회랑(South Cloisters)에 묻힌거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경내에 포함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임.
클레멘티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동 자산(현금 및 주식 등)은 약 26,000 파운드로 헨델이 남긴 유산보다 액수는 많지만, 70년 이상의 시대 차이로 인한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실질적인 구매력(Real Value)은 헨델이 더 높았거나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됨.
클레멘티는 은퇴하면서 회사를 파트너였던 콜라드 형제에게 넘기고 Collard & Collard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19세기 내내 영국 최고의 피아노 브랜드 중 하나였음. 지금도 앤티크 피아노 시장에서 꽤 비싸게 거래됨.
그 후 20세기에 들어와 Chappell에 인수되면서 끝나지만, 영국식 액션 (무거운 건반, 긴 울림)의 표준이 되었고, 여기에 미국의 주조 기술이 합쳐지면서 스타인웨이가 이 기술들을 집대성하여 현대 피아노를 완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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