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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의 수입 (리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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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가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를 일으키며 유럽 전역에서 활발하게 공연하던 전성기는 1839년 부터 1847년임.

약 8년동안 1,000회 이상의 공연을 했고, 모든 공연은 최초로 혼자서 2시간을 다 채우는 리사이틀이었음.

리스트가 공연을 할때면 흥분한 관객들이 무대 위로 꽃다발뿐만 아니라 브로치, 팔찌, 지갑 등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런 현상을 보고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음.

전체 공연의 수익금을 다 알 순 없지만, 리스트 전기 작가 중 가장 권위 있는 앨런 워커의 평전을 보면

1842년 4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단 6회의 리사이틀로 200,000프랑을 벌어들임. 당시 초급 장교의 1년 연봉(약 1,000프랑)의 200배에 달하는 거금인데, 공연을 관람한 황제가 별도로 하사한 금화와 보석은 제외한 순수 티켓 수익임.

이렇게 인기도 좋았고 돈을 쓸어 담던 리스트가 갑자기 1847년(35세)에 공식적으로 공연에서 은퇴함.

1847년경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비르투오소라는 직업에 지쳤습니다. 나는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이제 나비가 되어 번데기를 찢고 나오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연인 카롤리네 폰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보낸 편지에

당신의 천재성을 피아노 건반 위에서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의 진정한 소명은 작곡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당시 리스트가 자신의 기교 과시에 대해 극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말이 계기가 되어 은퇴했다고 함.

공연에서 은퇴한 리스트는 독일 바이마르 공국에서 음악 감독으로 일하며 제2의 삶을 시작함.. 연간 약 3,750 프랑의 연봉과 함께 ‘알텐부르크(The Altenburg)‘라는 대저택을 제공받아 주거와 생활의 안정을 보장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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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스트에게 이 월급은 큰 의미가 없었음. 은퇴 시점에 이미 현금 약 30만 프랑(추정치)을 파리 로스차일드 은행에 맡겨두었고, 여기서 나오는 금융 소득만 매년 12,000~15,000 프랑에 달했기 때문임. 초급 장교가 12년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거금이 매년 이자수익으로만 나오는데다 헝가리 광시곡같은 베스트셀러 악보의 인세까지 더해졌으니, 그가 바이마르행을 택한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안정된 삶을 원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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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73번째 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바이마르에서 찍은 사진.

안정속에서 리스트는 작곡과 레슨에 전념했는데, 리스트가 가르친 제자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람만 400명 이상임.

이 중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에이미 페이가 리스트에게 레슨을 받으며 고향에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을 보면

우리는 모두 피아노 주변에 둘러서 있고, 한 학생이 연주를 시작한다. 리스트는 담배를 피우며 듣다가, 벌떡 일어나 그 학생을 밀어내고 직접 시범을 보인다. 나머지 학생들은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배운다.

라는 내용과

리스트의 제자이자 비서였던 괼레리히가 1884년부터 1886년까지의 레슨 내용을 일기처럼 적은 기록에

오늘은 누가 슈만의 환상곡을 쳤다. 선생님(리스트)은 ‘여기는 더 꿈꾸듯이 쳐야 해’라고 말씀하시며 멜로디를 노래하듯 연주해주셨다.

라는 내용과 함께 리스트는 기술적인 것은 집에서 연습해 오라는 주의였고, 레슨 시간에는 오직 해석과 영감만을 가르쳤다고 함.

여러 학생이 모여서, 한 명의 연주를 듣고, 대가가 공개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방식과, 해석과 영감만을 가르치는 방식은 현대 마스터클래스의 시초가 됨.

비서의 일기중엔

어떤 부자 제자가 고마움의 표시로 레슨비 봉투를 몰래 피아노 위에 두고 가자 그걸 발견한 리스트가 불같이 화를 내며 봉투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당장 주워 가라! 나는 돈을 위해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는다. 라고 했다고 함.

실제로 40년간 레슨을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레슨비를 받지 않았다고 함.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 제3번

피아노 :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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