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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펠릭스 멘델스존 (1)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초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킨 업적으로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19세기 중반까지 ‘바흐’라는 이름은 거의 연주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일부 음악 애호가만 아는 정도였음. 젊은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괴테의 친구이자 베를린 싱아카데미 지휘자였던 칼 프리드리히 젤터의 지원을 받아,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바뀜.

이는 바흐 사후 80~100년 만에 대중 앞에 선 공연으로, 음악계에 큰 반향과 각성을 불러옴. 이후 바흐 음악의 재조명, 악보 출판, 바흐협회 설립, 작품집 발간 등으로 이어지며 ‘바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바흐는 유럽 음악의 중심에 재등장하여 오늘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위치를 확보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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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베를린에서 멘델스존이 1829년 공연 이후 바흐 <마태 수난곡>의 악보를 출판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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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이 편집한 바헨라이터 출판사의 《Matthäus‑Passion》 악보 표지. 1829년 베를린 시장 공연과 1841년 라이프치히 공연 버전 모두 포함됨.

멘델스존은 단순히 자료를 보존하고 발견한 것 뿐 아니라, 연주 가능한 형태로 악보를 직접 정리하고, 당시 환경에 맞는 편곡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바흐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듦.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바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와 19세기 음악사의 전환점으로 작용했음.

<마태 수난곡> 외에도 다양한 바흐 작품의 발굴 및 연주를 주도함. <요한 수난곡> BWV 245, 바흐의 미사와 칸타타, 푸가·협주곡·실내악 등의 복원과 출판에도 참여함. 런던 등지에서 원전 악보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자료를 정리하여 연주와 공연에 적용함.

이는 교회음악과 오라토리오 연구 및 연주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됨.

멘델스존의 기여는 단순히 공연 성사 이상으로, 바흐 음악의 대중화와 연구 문화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함. 슈만, 브람스 등 후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바흐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심어주고, 바흐가 서양 음악의 토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영향을 줌.

2015년에도 토마스 헨니히와 베를린 오라토리엔 합창단은 멘델스존이 1844년에 지휘했던 헨델의 <이스라엘 인 이집트> 공연을 복원했음. 이번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약 190년 전 멘델스존이 연주했던 바로 그 축약판 <마태 수난곡>을 재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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