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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생매장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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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Chopin, 펠릭스 조제프 바리아스 작, 1885년, 캔버스 유화,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소장)

1849년, 폴란드가 낳은 사랑받는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이 세상을 떠났음. 그의 시신은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지만, 심장은 분리되어 바르샤바로 옮겨짐. 이것은 자신의 일부라도 잃어버린 조국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알 수 없음.

쇼팽은 낭만주의적 인물의 전형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한 천재였고, 복잡한 사랑에 얽힌 외로운 연인이었으며, 비참한 건강 상태에서도 며칠씩 밤새 작곡을 이어가던 독창적 예술가였음. 그리고 유럽의 음악계를 사로잡은 천재였음.

쇼팽의 지극한 애국심은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의 심장을 고향 폴란드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짐. 하지만 그의 마지막 몇 마디를 보면, 단지 애국심 이상의 다른 이유가 있었던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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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데스마스크, 차르토리스키 박물관 소장

말년의 쇼팽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세가 점점 심해졌지만, 끝까지 작곡과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음. 1849년 9월 말, 그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더는 걸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고, 누이 루드비카가 바르샤바에서 와서 간호했음.

그의 생은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음. 그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지만, 실제로 병실 안에 들어가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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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 독일군에 의해 도난당했던 쇼팽의 심장이 바르샤바로 반환되는 모습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마지막 말은

“땅이 나를 질식시키는 것 같아… 이 기침이 나를 목 졸라 죽일 거야. 제발 내 시신을 절개해서, 내가 산 채로 묻히지 않게 해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쇼팽은 산 채로 매장되는 것을 두려워했음. 터무니없는 걱정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엔 충분히 가질만한 두려움이었음.

당시의 의학 지식은 매우 빈약했고, 콜레라 유행 시기에는 위생상의 이유로 시신을 가능한 한 빨리 매장했기때문임. 그래서 실제로 ‘산 채로 묻힌 사람’ 사례가 적지 않았고,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관의 내부에서 종을 울릴 수 있는 ‘안전 관(safety coffin)’을 만드는 등 다양한 장치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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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클레장제가 1849년에 제작한 쇼팽의 왼손 캐스트.

루드비카는 오빠의 유언을 철저히 따라 그의 시신을 절개하고 심장을 꺼내 수정병에 넣은 뒤, 코냑을 채워 보존함. 그리고, 그녀는 그 심장을 바르샤바로 가져가, 성십자가 교회 기둥 속에 안치함.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그의 유언이었기 때문임.

그는 임종 며칠 전, 정신이 또렷할 때 친구들에게 “파스키에비치(러시아 차르가 앉힌 바르샤바의 총독)가 내 시신이 바르샤바로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겠지. 그러니 적어도 내 심장만이라도 그리로 가게 해다오.”라고 말했다고 전해짐.

그가 진심으로 ‘심장을 꺼내 옮겨 달라’고 말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조국을 그리워하는 시적 표현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음.

19세기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생매장 공포증’이 쇼팽에게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름. 어쩌면 그는 점령군에게 마지막으로 반항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자신의 일부라도 고향 땅에 잠들게 하고 싶었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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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바르샤바에서 조립 중인 프레데리크 쇼팽 동상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그는 산 채로 묻히지 않았으며, 폴란드인들은 그의 애국심이 죽음조차 넘어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게 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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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s Gravest Fear

When Chopin, the beloved Polish composer, died in 1849, his body was buried at the Père Lachaise Cemetery in Paris. His heart, however, was removed and taken to Warsaw. Why? Was it his wish that a part of himself rest eternally in his lost homeland, or could there have been a more macabre reason?

culture.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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