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라운드 베이스
바로크 작곡가들은 짧은 베이스 선율 하나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도 음악이 계속 달라지게 만들었음. 이렇게 작품 전체나 긴 구간에서 같거나 거의 같은 베이스가 반복되는 작법을 그라운드 베이스(ground bass)라고 부름. 또는, 바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 또는 오스티나토 베이스라고도 함.
베이스가 그대로여도 그 위에 놓는 화음과 윗성부의 움직임은 매번 바꿀 수 있음. 바로크의 트리오 소나타에서는 반복할 때마다 화음을 달리 붙여 다른 조를 잠시 들려주거나, 두 윗성부가 같은 선율을 번갈아 모방하곤 했음. 헨리 퍼셀이 이 작법을 특히 능숙하게 다뤘음. 바로크 이후에도 계속 쓰였고, 오늘날 대중음악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음.
오스티나토·그라운드 베이스·샤콘·파사칼리아
Section titled “오스티나토·그라운드 베이스·샤콘·파사칼리아”비슷한 용어가 많지만 가리키는 범위가 서로 다름.
- 오스티나토(ostinato): 한 성부에서 같은 음형을 오래 되풀이함. 선율뿐 아니라 리듬도 오스티나토가 될 수 있음. 라벨 《볼레로》의 작은북 리듬이 대표적인 예임.
- 그라운드 베이스(ground bass, basso ostinato): 오스티나토가 베이스에서 나타나는 경우임. 이 작법으로 만든 작품 자체를 그라운드 베이스라고 부르기도 함.
- 샤콘(chaconne)과 파사칼리아(passacaglia): 바로크 시대에 그라운드 베이스를 바탕으로 만든 장르임. 둘 다 대체로 3박자를 사용함.
범위로 보면 오스티나토 안에 그라운드 베이스가 있고, 그 안에 샤콘과 파사칼리아가 있음. 리듬만 반복되는 오스티나토를 그라운드 베이스라고 부를 수는 없음.
같은 베이스를 다르게 화성화하기
Section titled “같은 베이스를 다르게 화성화하기”같은 베이스에 같은 화음까지 붙이면 반복할수록 음악이 멈춘 듯 들리기 쉬움. 그래서 작곡가는 베이스 음은 그대로 두고 화음만 바꿈. 같은 두 베이스 음도 앞뒤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화음으로 연결할 수 있으므로, 잠시 다른 조에 들어간 듯 들리게 하거나 조바꿈을 예고할 수도 있음.
베이스 진행에 화음을 붙이는 여러 방법을 정리한 자료에는 단2도부터 셋온음까지의 진행이 오름과 내림으로 나뉘어 있음. 같은 음정에 붙일 수 있는 화음도 여러 가지임. 한 작품에서 이 방법을 모두 쓸 필요는 없음. 아래 퍼셀의 작품처럼 몇 가지만 골라 써도 긴 곡에 충분한 변화를 줄 수 있음.
반복이 끝날 때마다 같은 정격종지로 닫으면 구절의 길이도 매번 똑같이 느껴짐. 한 번의 반복이 끝나는 곳을 종지로 닫지 않고 다음 반복과 이어 놓으면 경계가 흐려짐. 화음이 바뀌는 시점도 달라져서 같은 길이의 베이스가 되풀이되어도 구절은 서로 다르게 들림.
퍼셀 《G단조 소나타》 Z 807 분석
Section titled “퍼셀 《G단조 소나타》 Z 807 분석”이 곡의 베이스는 줄곧 되풀이되지만, 윗성부와 화음은 반복할 때마다 달라짐. 퍼셀은 두 바이올린이 서로를 모방하게 만들고, G단조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조가 중심처럼 들리는 구간도 넣었음. 악보에 해당 대목을 표시해 두었음.
곡의 중심은 G단조임. 다음 대목에서는 다른 조의 종지나 딸림화음을 써서 그 조가 잠시 중심처럼 들림. 어디서부터 조가 바뀐 것으로 볼지는 분석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음.
- 12마디 셋째 박: B♭장조
- 17마디: D단조
- 27마디: F장조
- 28마디: B♭장조. 다만 종지는 위장종지로 끝남.
- 33마디: C단조
- 78마디: E♭장조
- 87마디: F장조
- 88마디: E♭장조
- 93마디: C단조
- 107마디: D단조
- 117마디: F장조
- 131마디 둘째 박과 133마디: C단조
- 158마디와 163마디: E♭장조
퍼셀은 베이스가 한 바퀴 돌 때마다 G단조 정격종지로 닫지 않았음. 16마디와 106마디의 G장조 화음은 G단조의 으뜸화음으로 쓰이지 않음. 다음에 오는 C단조 화음의 딸림화음으로 들리도록 V4/2/v–v6 진행 안에 넣었음. 26마디와 86마디의 G감화음도 G단조의 화음으로 처리하지 않고, F장조로 들어가는 vii°6–I로 연결했음. 악보에서 이 대목을 확인할 수 있음.
윗성부에서는 베이스 위의 5도와 6도가 번갈아 나오는 5–6 진행이 자주 들림. 1마디와 12마디에서는 5도와 6도 가운데 하나만 화음에 속하고 다른 하나가 꾸밈음인지, 두 음이 모두 화음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갈리지 않음. 그래서 화음이 정확히 어느 음에서 바뀌었다고 한 가지로 정하기 어려움. 71마디부터 이어지는 7–6 계류음에서도 같은 모호함이 나타남.
두 바이올린은 곡 전체에서 같은 선율을 번갈아 연주함. 먼저 시작하는 성부를 둑스(dux), 뒤따라 모방하는 성부를 코메스(comes)라고 부름. 악보에는 각각 D와 C로 표시했음. 1마디 첫째 박에서 제1바이올린이 낸 선율을 제2바이올린이 3마디 첫째 박부터 따라 하는 대목이 한 예임.
뒤따르는 성부는 앞선 성부와 같은 박의 위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음. 앞에서 살펴본 16세기와 18세기의 모방 작품에서도 쓰인 방식임. 두 성부가 들어오는 사이는 보통 세 박 또는 여섯 박임. 36, 41, 56, 63, 71, 121, 133, 171, 178, 181, 182마디에서는 그보다 짧은 간격으로 따라붙음.
베이스가 다시 시작할 때마다 두 윗성부가 주고받는 방식도 거의 매번 바뀜. 16마디와 126마디에서는 모방을 멈추고 두 성부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호모포니를 사용함. 다음 두 대목에서는 더 큰 변화가 나타남.
- 196마디에서 두 선율을 동시에 모방하기 시작하고, 201마디에서는 두 바이올린이 맡은 선율을 서로 바꾸어 되풀이함.
- 99마디와 102마디에서는 제2바이올린이 그라운드 베이스 자체를 모방함.
리듬과 박자
Section titled “리듬과 박자”화음과 모방만 바꾸는 것은 아님. 36마디에서는 8분음표가 이어지고, 81마디와 146마디에서는 움직임이 16분음표로 빨라짐. 126마디에는 당김음, 136마디에는 부점리듬이 나옴. 166~185마디에서는 박자 자체가 복합박자로 바뀜. 이런 변화는 대체로 베이스가 새로 시작하는 지점에 맞춰 나타남. 바로크의 그라운드 베이스와 변주곡에서 자주 쓰던 방법임.
- 그라운드 베이스에 조 안의 단순한 화음을 붙임. 처음에는 화음을 한꺼번에 누르면서 각 성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함.
- 같은 베이스에 다른 화음을 붙여 봄. 다른 조가 잠시 중심처럼 들리게 하거나, 첫 화음을 바꾸어 구절의 경계가 달라지게 만들 수 있음.
- 베이스 위에 선율을 하나 쓰고, 다른 윗성부가 그 선율을 뒤따라 모방하게 만듦.
- 만든 것 가운데 잘 들리는 안을 골라 순서를 정함. 여섯 번 반복한다면 처음과 마지막은 단순하고 비슷하게 두고, 가운데로 갈수록 화음·모방·리듬의 변화를 키울 수 있음.
이 글에 관련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dcinside digital piano gallery에도 게시하고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은 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