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핑거 포지션
Fundamentals of piano practice
Section titled “Fundamentals of piano practice”© 2009 Chuan C. Chang. Copy permitted if author’s name, Chuan C. Chang, and this copyright statement are included.
피아노 연습의 원리 한글판 (dcinside digital piano
아치형 자세는 교본에서 흔히 자연스럽고 이완된 손 모양이라고 설명됨.
하지만 이 표현은 생각보다 모호함.
피아노를 오래 쳐온 사람이라면 대충 어떤 모양을 말하는지 바로 떠올릴 수 있지만,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 없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손 모양이란 사람마다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음. 그래서 아치형 자세는 감각적인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함.
그 기준은 책상 위에서 만드는 손 모양임.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어깨 너비 정도로 올리고, 손바닥을 아래로 둔 상태에서 계란이나 소프트볼을 가볍게 감싸듯 손 전체를 둥글게 만듦. 이때 손가락 끝은 테이블에 닿고, 양쪽 엄지 손톱은 각각 반대쪽 어깨를 향하도록 놓음.
이 상태가 기준이 되는 아치형 자세이고, 피아노 연주에서 손가락의 기본 자세임.
아치형 자세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음.
각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제어하기 쉽고, 검은 건반 사이를 정밀하게 누르기에도 유리함. 손가락들이 거의 한 줄로 정렬되기 때문에 건반과의 거리 차이가 줄어들고, 터치가 고르게 나옴. 손가락이 긴 사람의 경우에도 2·3·4번 손가락을 적당히 말아주면 엄지를 쓰기가 한결 수월해짐.
하지만 단점도 있음.
아치형 자세에서는 손가락 끝으로만 연주하게 되기 쉬운데, 이때 충격이 집중되면서 부상 위험이 커질 수 있음. 특히 아주 강하거나 아주 여린 소리를 낼 때 문제가 됨.
또 아치 모양을 유지한 채 아래로 누르는 동작은 여러 근육을 동시에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므로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림. 손끝이 건반에 닿는 면적도 좁아져서 검은 건반에서 실수가 잦아질 수 있음.
그리고 구조적인 한계도 있음. 손가락이 말릴수록 움직임이 둔해지는 문제인데, 이게 흔히 말하는 움직임의 제한임. 이건 직접 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음.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을 일자로 편 상태에서 건반을 누르듯 위아래로 움직여봄.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손가락을 점점 말아가면, 움직임의 폭이 줄고 반응도 둔해지는 것이 느껴짐. 손가락이 더 말릴수록 움직임의 자유도가 구조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임.
여기서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자세가 하나 있음.
손가락 마지막 마디, 즉 손톱이 있는 마디가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꺾이는 형태임. 보통 무너진 자세라고 불림.아치형과는 반대 모양이라 많은 교사들이 안좋은 모양이라고 가르치지만, 사실 이 자세가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음.
오히려 손가락 앞부분 전체를 사용하게 돼 터치가 안정되는 경우도 있고, 불필요한 긴장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음.
이 마디는 근육으로 힘을 줘서 버티는 구조가 아님. 관절과 힘줄 구조 때문에 일정 각도 이상으로는 자연스럽게 더 꺾이지 않게 돼 있음. 그래서 겉보기엔 불안해 보여도 실제로는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 상태가 아니니 이걸 문제라고 보고 억지로 모양을 바꾸려 하면 오히려 다른 마디나 근육에 긴장이 생길 수도 있음.
그래서 초보자에게 아치형 자세를 가르치는 건 필요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표준 모양을 강요하는 건 위험함.
손 구조는 사람마다 다르고, 구세대 교육 방식에서 흔히 보이던 이런 접근은 오히려 학생의 성장을 늦추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임.
이 지점에서 플랫 핑거 자세가 중요해짐.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함께 연주할 때 검은 건반은 높이가 있어 손가락을 계속 아치형으로 유지하면 누르기가 힘들어짐. 이럴 때는 손가락을 펴서 손끝이나 손가락 앞면 전체로 눌러주는 방식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안정적임.
이런 자세들을 통틀어 플랫 핑거 자세라고 부름. 플랫 자세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손가락을 거의 일자로 펴는 방식임. 호로비츠가 사용한 자세인데, 이 자세에서는 손가락 앞면 전체로 건반을 누르게 되므로 장시간 연습에서도 부상 위험이 낮아짐.
동작 자체도 단순해서 사용하는 힘이 줄고 릴렉스에 유리함. 또, 건반과 맞닿는 면적이 넓어 미스터치가 줄고, 손가락의 민감한 부분으로 건반을 느낄 수 있어 톤 조절도 더 섬세해짐.
보편적으로는 아치형이 구조적으로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바닥 쪽 면을 사용함.
힘의 관점에서도 플랫 자세가 약하다고 보긴 어려움. 실제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은 검은 건반은 플랫, 흰 건반은 아치형으로 치는 혼합형임.
이렇게 해야 각 손가락이 자기 건반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임.
플랫 자세에서는 손가락 아래쪽 힘줄이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지탱해주고, 아치형처럼 모양을 유지하려는 별도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음.
손톱 마디가 바깥으로 휘는 사람도 이 구조 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함. 강하게 칠 때 아치형은 굽힘과 폄을 동시에 조절해야 하지만, 플랫 자세는 구조상 훨씬 단순함.
그래서 아치형은 제대로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플랫 자세는 본능적이고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다보니 독학한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임.
플랫 자세 연습에는 B장조 스케일이 잘 맞음. 양손 모두 2·3·4번으로 검은 건반을, 1·5번으로 흰 건반을 치게 되는 구조라 흑건을 1번이나 5번으로 치지 않는다는 기본 핑거링에도 맞음.
이때 손바닥을 건반에 가깝게 낮추면 정확도와 위치 감각도 함께 좋아짐. 레가토 역시 아치형보다 플랫 자세가 더 부드럽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 한 손가락으로 두 음을 누르는 것도 쉬워짐. 쇼팽이 레가토에 강했고 B장조 스케일을 강조했으며 한 손가락으로 여러 음을 연주하는 데 능숙했던 점을 보면, 플랫 자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봄.
어쨌든, 중요한 건
어떤 자세가 정답이냐가 아니라, 손가락을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임.
아치형 하나만 강요하는 교육은 위험하고,각자의 손에 맞는 자세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함. 호로비츠가 플랫 핑거로 연주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의 탁월한 테크닉 역시이런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큼.
물론, 아치형 자세도 필요함. 하지만 기교적인 연주에 반드시 아치형만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임.
정말 중요한 건 유연한 손가락임.